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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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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동 선사유적 주거지 사진
<주부토 기와>

918년 왕건은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건설한 후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940년(태조 23)에는 전국 주·부·군·현의 지명을 고쳤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부천의 읍격이 상승된 것을 의미한다.

995년(성종 14) 고려는 지방제도를 정비하여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0년(의종 4)에는 지명이 수주에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변화되면서 읍격도 상승하였다. 고려 전기의 도호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설치되었다.

원미산 사진
<원미산>

당시 부천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12세기에 백성의 유망이 많아지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정치적 변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개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 고려시대 부천의 지명은 계속 변화했으며, 읍격 또한 승강을 반복하였다. 1215년(고종 2)에 안남도호부에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길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최종수정일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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