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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찾은 독립운동의 역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06
10월 24일,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의 둘째 날이다. 일정은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4일간의 일정 중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가장 많이 엿볼 수 있는 날이었다.
4월 참변 추모탑에서 설명을 듣는 원정대 학생들.   ⓒ 민경혁 기자


첫 방문지는 4월 참변 추모탑이다. 4월 참변은 3.1운동 이후 러시아로 이주한 동포들이 항일 운동을 펼치자 일본이 보복을 가한 사건으로, 일제는 한인 거주 지역에 침입하여 한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한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추모탑은 초라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생들은 추모를 위해 묵념을 하고, 독립을 위해 싸워주신 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학생들은 사전에 준비했던 내용을 토대로 각자 지정된 유적지 앞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최재형 생가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원정대.   ⓒ 민경혁 기자


다음은 최재형 생가로 이동했다. 최재형은 일제강점기 경제력 및 영향력을 가지고 연해주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을 이끈 인물로, 많은 재산을 통해 군자금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을 도왔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도 사실은 최재형이 뒤에서 모든 지원을 맡았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장소이다.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학생들은 설명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위) 최재형 선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 (아래) 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거북이 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 민경혁 기자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로 인해 우리의 유적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 민경혁 기자


동북공정 정책으로 중국과 발해 역사를 두고 분쟁을 하고 있는 요즘, 원정대는 거북이 공원을 찾았다. 거북이 공원은 발해의 유적으로, 고구려의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어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적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외교적인 문제를 걱정해 비석을 없애고 글씨를 지워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조경원 가이드는 “학생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에 우리의 역사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안중근 의사 추모비 앞에서 학생들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 민경혁 기자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꼬레아 우라’를 외쳤다. 하지만 그의 유골은 끝내 찾지 못했고, 그를 대신해 업적을 기려 추모비를 세웠다. 또 이 비석에 숨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비석에 새겨 있는 의사를 잘못 해석해 의과대학 앞에 세웠다가 이곳 고려인 문화센터 앞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이주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모습.   ⓒ 민경혁 기자


러시아에는 많은 고려인들이 사는 만큼, 그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고려인들이 살아온 모습이나 이주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던 고려인 문화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연해주로 이주했던 한인들의 삶을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영상을 통해 고려인들의 심정을 그대로 느끼며 많은 학생이 그 절망감에 눈물을 글썽였다.

한 학생이 우리의 전통음악 ‘아리랑’을 듣고 있다.   ⓒ 민경혁 기자


또 우리의 전통음악인 아리랑은 고려인들에 의해 계속 불리며 그들이 역사를 기억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아리랑은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하고, 러시아어로 개사가 되기도 해 고려인들 사이에 널리 펴져 있다. 현재 한류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에 우리나라의 고유한 음악도 러시아에 울려 퍼졌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이상설 유허비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 민경혁 기자


헤이그 특사로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상설의 유허비는 예상보다 더 초라하게 있었다. 이상설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로 떠나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그는 죽기 전 마지막까지도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진 채 삶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가 떠내려간 수이푼 강 앞에 외로이 서 있는 비석에서 독립을 향한 이상설의 열정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원정대는 라즈돌로에 역을 방문했다.   ⓒ 민경혁 기자


유적지 탐방을 마친 후 라즈돌로에 역을 방문했다. 라즈돌로에 역은 연해주의 한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할 때의 출발지였으며, 동시에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에 위치해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고려인들의 한이 가득했다. 라즈돌로에 역을 둘러본 후 곧바로 우골나야역으로 이동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위) 석식 후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아래) 숙소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토론회에서 한 학생이 열심히 활동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 민경혁 기자


학생들은 직접 활동일지에 적은 내용을 조 내에서 한 명씩 발표해 가장 좋은 의견을 뽑았다. 그 후 각 조의 대표자들이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은 오늘의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나 설명 등을 얘기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둘째 날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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