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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조선시대에 찾아온 위기, 애민정신으로 이겨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04
과거에도 천재지변은 있었다. 지금보다 시스템이나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그러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때때로 찾아오는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 됐다. 글. 김화숙 사진. 경기관광공사, 문화재청, 남양주시
여주시 세종대왕릉  ⓒ 


조선 시대는 물론 한국사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성군인 세종대왕은 백성의 아픔을 함께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를 몸소 실천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인 애민 정신은 그 시절 정책의 바탕이 됐다. 조선 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백성 을 구제하기 위해 목민관이 해야 하는 역할을 탐구했다. 백성을 생각한 세종대왕의 애틋한 마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영릉. 그곳 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다. 세종대왕의 능을 바라보며 백성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배경에는 백성이 우리 말과 글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애민 정신이 있었다. 세종대 왕은 방대한 편찬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문화적 기틀을 세웠고, 과학과 기술 발전에도 집중해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재난과 재해를 대비하는 데 에도 힘썼다.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다름 아닌 백성. 세종대왕은 예방에 집중하며 재난의 기미가 보이면 관리들이 한발 앞서 조치 하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여주시 세종대왕릉 재실  ⓒ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수해 입을 백성을 염려해 수문(水門)을 열어 침수가 일어나지 않게 했다. 태평성대로 통하는 세종대왕 재위 기간에도 심각한 흉년이 있었다. 그때마다 세종대왕은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구휼미를 재량껏 사용 할 수 있게 하고, 식량을 찾아 이동하는 유랑민을 구제하고자 작황이 좋은 지역 에는 진제소(賑濟所)를 설치하는 등 구휼 체계를 갖추었다. 재난이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이에 대비하고자 각종 구휼 물자도 상시로 준비했다.

세종대왕이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발명한 측우기  ⓒ 


오늘날 소방방재청의 원조는 세종대왕 때 설치한 ‘금화도감’이다. 당시 한양에서 종종 발생하는 화재로 백성이 피해를 보자, 이를 예방하고자 한 것. 더불어 화 재가 났을 때도 빠르게 불을 끌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은 전문가 중심의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실행했다. 역병 이 돌거나 기근이 심한 지역에는 전문가 를 파견해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했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닥친 재난이나 재 해를 왕이 부덕한 데서 이유를 찾기도 했는데, 세종대왕의 이러한 조치를 보면 왕의 덕이 곧 리더십과 연결된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목민관을 향한 다산의 당부 다산 정약용은 저서 <목민심서>를 통해 지방 수령인 목민관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지역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목민심서>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 중 하나는 ‘청렴’과 ‘애민’이다. ‘자신을 다스려라’, ‘공무에 봉사하라’, ‘백성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는 국가적 위기 상황인 재난과 재해 발생 시 관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도 연결된다.

남양주시 정약용유적지  ⓒ 


12강으로 구성된 <목민심서> 애민 편에서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을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인지를 다룬 ‘구재(救災)’ 방법을 정리했다. 어떠한 일이든 정성스럽고 믿음직하게 처리해야만 위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를 처리하는 과정 에서 부정과 부패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호품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가 백성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는 까닭이다. 더불어 재난과 재해 극복의 골든타임, 즉 적절한 때 에 맞춰 구제하도록 당부했다. 재난 구제 과정에서 목민관이 ‘성(誠)’과 ‘신(信)’에 근본을 두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지방 수령관인 목민이 가져야할 마음 가짐을 적은 <목민심서>  ⓒ 


다산 정약용은 백성이 목민관을 믿고 따를 때 재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닥친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만큼 예방도 중요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남양주시)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해마다 한강이 범람해 지역민이 수해를 입는 것을 보았다. 매년 일어나는 재해라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목민관이 재난 방지에 힘을 기울였다면 백성의 피 해는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재해 이후에 목민관이 해야 할 일도 세심하게 정리했다. 백성이 일상생 활로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것. 물난리가 지나가면 전 염병이 돌 수 있으니 예방과 치료 등의 문제도 언급했다. 재난과 재해는 현대에도 진행 중이다. 시스템이 고도화되어도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본질이 다르지 않다. 목민관을 향한 다산 정약용의 당부가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종대왕릉(영릉)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한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문의 031-880-4700 정약용유적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에는 다산 정약용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정약용유적지가 있다. 애민 정신으로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다산정약용선생유적지 문의 031-590-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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